지도자끼리 계약 ‘물건 취급’
계약 당일 조건 달라지기도
팀 이적 땐 음해·보복 다반사
퇴직금·실업급여 안 주기까지
한 선수를 죽음으로 몰고간 ‘철인3종 사태’에는 한국 실업팀의 구조적인 문제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선수들이 뛰는 필드에서는 보이지 않던 실업팀의 그림자를 3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실업팀 선수를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했다. 직장운동경기부라 불리는 실업팀 내 신체폭력 피해는 1251명의 대상자 가운데 26.1%(326건)에 이른다. 거의 매일 폭행당했다는 응답자도 8.2%나 됐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성적 등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언어폭력, 생활 통제, 성폭력 등까지 더하면 피해자는 더 늘어난다.
고 최숙현 선수가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과정이 알려지면서 실업팀 내 구조적인 문제를 돌아보자는 목소리도 커진다. 그 가운데 실업팀 선수들의 불공정한 계약 문제가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부분의 실업팀 선수들은 고액 연봉자가 많은 프로 선수들(개인사업자)과 달리 1년짜리 근로계약을 맺은 뒤 갱신한다. 4대 보험 적용을 받는다. 최숙현 선수가 속해 있던 경주시체육회는 경주시청 직장운동경기부를 위탁받아 운영했다. 최숙현 선수도 시체육회와 2017년과 2019년에 1년 단위 계약을 맺고 운동했다. 팀 사정에 따라 복지에는 차이가 있지만, 실업팀 선수들은 단년계약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에 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실업팀 계약에 근로 조건과 처우가 열악한 것은 물론 일방적 계약, 재계약 불안 등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표현될 만큼 불합리한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갑(회사)’ 중심이다. 선수 의견이 배제된 가운데 지도자끼리 계약을 하기도 하고, 계약을 미루거나 계약 당일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 이 밖에 월급이 적게 입금되거나, 조금씩 회사 중심으로 바뀌는 계약도 있었다.
실업팀 인권 실태를 조사한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팀내에서 거의 모든 것은 지도자 권한으로 이뤄진다. 불공정한 계약은 일상이고, 경기 출전, 계약, 연봉 인상 등도 압박 수단이 된다”고 했다. 좋은 대우를 해주는 다른 팀으로 이적할 때 음해나 보복 행위도 적지 않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의서를 써주지 않는다거나, 팀을 옮긴 뒤 주장 선수의 폭행이 있었다는 등 이적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계약 조건
선수들 ‘울며 겨자 먹기’ 사인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목소리
한 선수의 진술서에는 “감독님이 계약 기간 도중에 선수를 방출시킬 수도 있다. 선수가 마음에 안 들면 감독이 선수를 괴롭혀서 못 견디고 나가게 만들기도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8~9개월 아파서 쉬고 있으니까 감독님과 코치님이 강제로 사직서를 쓰라고 했다.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체전을 못 뛰면 감독, 코치가 불이익을 받게 된다. 네가 팀에 있고 싶어도 계약서상 감독의 권리로 자를 수 있다고 해 결국 사직했다”고 전했다. 1년 계약의 제도를 악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가 퇴직금을 받지 못하도록 계약 날짜를 조정하거나 실업급여를 타지 못하게 한 사례도 있다.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회장(전 쇼트트랙 감독)은 “어떤 실업팀에서는 ‘갑’이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해지 이유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등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있다”며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도 실업팀 선수들이라 알아도 그냥 사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수 감독이 많은 실업팀들의 재계약 근거도 문제가 된다. 여 회장은 “보통 시청팀들의 감독들은 10년 넘게 하신 분들이 많다. 1년씩 연장하는데 어떻게 연장되는지, 재계약 여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불분명하다. 10년씩 하다보면 지역 체육회, 담당 공무원과 카르텔이 형성된다. 감독들의 권력이 막강한 만큼 계약 사항에 대해서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표준근로계약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July 10, 2020 at 04: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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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팀 ‘밥그릇 카르텔’]1년짜리 비정규직 선수 인생 ‘찍히면 끝장’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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