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없는 김밥 '키토김밥'
쌀밥이 한 톨도 들어가지 않아도 김밥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키토제닉 김밥’이 그런 김밥입니다. 밥이 있어야 할 자리를 채운 건 노란 달걀지단. 키토제닉 김밥을 처음 유행시킨 곳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역 ‘보슬보슬’에서 판매하는 ‘키토김밥’은 김밥 한 줄당 무려 달걀 5알 분량의 지단으로 꽉 차 있습니다. 가늘게 채 썰어 넣은 덕분에 포슬포슬 보드랍게 씹히는 식감이 독특하죠.
보슬보슬 사장 이용훈씨는 “이전 다른 이름의 분식집을 할 때 김밥 주문하는 손님들이 ‘밥 양을 줄여달라’거나 ‘밥을 아예 빼고 말아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달걀 지단을 넣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하더군요. 키토는 ‘키토제닉 식단(ketogenic diet)’의 줄임말. “탄수화물 되도록 먹지 않는 게 키토제닉이라서 그렇게 이름 붙였지요.” 이 곳 말고도 서울 낙성대역 ‘소풍가는날’, 신도림동 ‘앞산분식’, 여러 지점을 둔 프리미엄 김밥집 ‘마녀김밥’ 등이 밥을 아예 넣지 않거나 거의 없다시피 한 김밥을 선보이며 ‘키토김밥집’으로 손님을 모으고 있습니다.
키토제닉 식단은 밥·빵·국수 등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주는 식이요법을 말합니다.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상태를 키토시스(ketosis)라고 하는데, 여기서 키토제닉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저탄수화물·당질제한 식단도 기본적으로 탄수화물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키토제닉과 뿌리가 같지만, 키토제닉은 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탄수화물을 하루 20~40g 미만으로 제한하고, 근육 생성과 몸의 대사를 위해 단백질을 적정량 섭취하며, 연료로 쓸 에너지의 열량을 버터·올리브오일·생 들기름 등 건강한 지방으로 섭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키토시스 상태에서 섭취하는 지방은 모두 에너지로 쓰거나 배출하고, 모자라면 몸에 쌓인 체지방을 태워 보충하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연스레 체지방이 줄어들게 된다는 게 이 식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원리입니다.
키토제닉 식단이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16년 MBC 다큐멘터리 ‘지방의 누명’이 방영되면서. 기름 많은 고기와 버터 등 동물성 포화지방을 마음껏 먹어도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살이 빠지고 건강해진다는, 그 동안의 상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죠.
물론 키토제닉은 아직 논란의 대상입니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에 2003년 여러 다이어트 실험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저탄수화물·고지방·고단백질(‘황제 다이어트’로 알려진 앳킨스 다이어트) 식단이 3개월과 6개월에서는 전통적인 다이어트보다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었으나, 1년이 지나자 차이가 없었습니다. 2009년 NEJM에 실린 보고서에는 과체중 성인 811명을 4그룹으로 나눠 키토제닉·저지방·고탄수화물 다이어트를 2년에 걸쳐 장기 진행한 실험이 소개됐습니다. 실험 결과는 열량을 제한하면 어떤 식사든 체중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이어트 비결은 ‘비율’이 아니라 ‘총열량’이란 당연한 결론이었죠.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이 높아 전체 열량의 50~55%로 낮출 필요는 있지만, 전체 섭취 열량도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대부분 영양학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럼에도 키토제닉 식단은 확실하게 뿌리 내린 듯합니다. 보슬보슬 이용훈 대표는 “손님층이 20~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다이어트, 체중 관리에 관심 많은 젊은 여성들만 키토제닉 김밥을 찾지 않는단 거죠. 키토김밥은 키토제닉 식단이 얼마나 한국사회에 확산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죠. 김밥이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지 궁금합니다. 키토김밥 만드는 법은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September 18, 2020 at 07:5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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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 김선생] ‘복쌈’부터 ‘키토김밥’까지, 김밥의 진화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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