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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의 문헌 속 ‘밥상’] “밥은 바빠서 못 먹겠고…술만 술술 넘어간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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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타령꾼의 장타령 또한 소중한 문헌이다. 저 노랫말이 보통 사람의 일상과 마음속에 자리한 술이라는 사물의 인상과 위상과 위력을 한마디로 압축하므로. 장꾼의 한잔뿐이랴. ‘왕좌의 게임’에 얽힌 거대한 한잔도 있다. 고려 시인 이규보(李奎報, 1169~1241)가 쓴 고구려 건국 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 속의 한잔은 건국의 시초가 된 잔이다.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는, 인간의 세계에서 처음 마주친 여인 유화를 유혹할 적에 술을 동원했다. 황금 동이에서 따른 한잔이야말로 하룻밤 사랑의 중개자였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비단자리는 눈부시고(錦席鋪絢明)/ 황금 동이에는 좋은 술이라(金준置淳旨)/ 사뿐사뿐 과연 스스로 술자리로 들어와(편선果自入)/ 권커니 잣거니 하다 이내 취했네(對酌還徑醉)”

유화의 아버지이자 물 세계의 지배자인 하백은 이 사랑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백은 딸을 유혹해 가부장의 체면을 구긴 해모수와 죽기로 다투었고, 유화는 쫓겨나 부여로 흘러들어갔다. 이 하룻밤 사랑의 결과, 해모수와 유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주몽이다.

술을 마시면 불을 쬔 듯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알코올에 약한 사람들은 몸이 달아오른다고 할 만한 느낌까지 든다. 몸뿐인가, 정신까지 달아오르는 수가 있다. 순도 높은 알코올을 한자어로는 주정(酒精)이라고 한다. 영어권에서는 스피릿(spirit)이 주정에 상당한 말이다. 그야말로 정수(精粹) 겸 정수(精髓)이다. 한편 술이란 몸과 마음에 불을 붙이는 물이 아닌가. 술만큼이나 자주 쓰는 ‘주(酒)’는 일찌감치 한국어에 자리 잡은 동아시아 공통의 어휘다. ‘주(酒)’는 발효주, 증류주, 혼성주, 저도의 알코올성 음료를 두루 나타내는 말이다. 그 자체로 주정, 알코올의 뜻이 있다. 신의 물방울(drops of God), 생명수(water of life), 연회(feast), 한잔할 만한 음료 또는 가벼운 한잔(tiff), 취하는 음료(drink), 품위와 가치가 있는 음료(vintage), 돈이 되는 액체 상품(wet goods) 등의 의미와 말맛과 쓰임은 아득한 고대로부터 전해진 말로서, 주정과 스피릿이 통하듯 동서를 관통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이렇게 말한다. 술이란 “사람의 사고와 행동의 특성을 선하게 또는 악하게 만”들고, “좋은 일 또는 나쁜 일을 만들어낸다”고. 한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漢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술은 온갖 쾌락 가운데서도 으뜸이고 또 천하에서 누릴 수 있는 멋진 복”이라고. 예부터 술은 취함과 각성을 오락가락하면서 사람을 울리거나 웃겼다. 잘만 즐기면 누릴 만한 고양과 상승의 세계에 이르고, 한순간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나락이다. 지킬도 만들고, 하이드도 만드는 이 물, 사람이 적극적으로 그 말을 풀이하고 역사를 기록한 이래 그 속성이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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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1,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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