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다’의 대상은 액체다. 액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하는 것이 물이지만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할 때의 마시는 대상으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술이다. 술은 단어의 역사를 살펴봐도, 방언을 살펴봐도 특별한 변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역사를 살펴보면 본래 ‘수을’이었다가 ‘수울’이 된 후 오늘날의 ‘술’이 된다. 방언을 살펴봐도 모두 ‘술’ 또는 이와 비슷한 말로 나타난다.
그러나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액체 밥은 그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 쌀이 남아돌아가니 쌀로 술을 빚든 과자를 만들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넉넉한 밥상에 반주(飯酒)로 곁들이면 밥맛을 돕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약을 먹듯이 조금씩 마시면 ‘약주’가 될 수도 있다. 미칠 정도로 많이 마시지 않으면 ‘광약’이 아닌 ‘약주’가 될 수도 있다. 즐겁게 마시면 얼굴은 불콰해질지언정 불쾌해지지는 않는다.
술을 빵이나 밥과 관련을 짓는 ‘액체 빵’과 ‘액체 밥’은 어색해 보인다.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액체로 된 빵과 밥이라는 것인데 술이 빵과 밥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술의 주재료는 곡물인데 빵을 만들거나 밥을 지을 수 있는 재료로 술을 만드니 액체 빵, 혹은 액체 밥이라 할 수도 있다. 특히 맥주 양조장의 효모가 빵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니 액체 빵은 말이 된다.
그런데 쌀은 사정이 다르다. 막걸리나 청주는 쌀로 밥을 지어 만든다. 때로는 술의 맛을 올리기 위해 쌀알을 반 이상 깎아내어 밥을 짓기도 한다. 밥이 돼야 할 것으로 술을 빚으니 이렇게 빚은 술은 밥과 공생할 수도 없고 밥을 대용할 수도 없다. 우리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금주령은 액체 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표면적으로 금주령은 ‘술 권하는 사회’를 바로잡고자 내려진 것이지만 실상은 배고픈 현실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결정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액체 밥은 그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 쌀이 남아돌아가니 쌀로 술을 빚든 과자를 만들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넉넉한 밥상에 반주(飯酒)로 곁들이면 밥맛을 돕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약을 먹듯이 조금씩 마시면 ‘약주’가 될 수도 있다. 미칠 정도로 많이 마시지 않으면 ‘광약’이 아닌 ‘약주’가 될 수도 있다. 즐겁게 마시면 얼굴은 불콰해질지언정 불쾌해지지는 않는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August 21, 2020 at 09:3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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